- 간토학살피해자 제97주기 추도모임 - 동학혁명, 3.1혁명을 학살로 억압한 일제, 1923 간토대진재 시 학살재현 - 일제의 국가폭력과 혁명과 독립의 아우내로 재조명 - [기억과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모습 드러내 간토학살피해자 제97주기 추도식, 아우내에서 열려 1923한일재일시민연대와 사회적협동조합 기억과평화가 공동주최한 간토학살피해자 제97주기 추도식이 한국 천안시 병천면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에서 열렸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서 간토학살사건 관련단체인,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기억과평화협동조합, 1923인문학연구소, 기장 1923진상규명위원회의 임원들과, 연대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천안민족문화연구회 대표자,그리고 씨알재단에서도 참여하였다. 임광순 (사협 기억과평화 이사)의 사회로 오후 2시에 개회하여 헌화를 시작으로 제97회 메시지, 추도사, 연대사, 추도노래가 이어졌다. 간토피학살자를 위한 추도메시지 - 김종수 이번 행사를 주최주관한 1923한일시민연대 김종수 상임대표는 간토학살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일본 내각과 군대, 경찰, 민간자경단을 향한 분노가 일었지만, 10년 넘게 진실규명과 추도활동을 해오면서 점점 분노의 대상이 한국 정부로 바뀌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종수 대표는 한국 언론이 코이케유리코의 추도사를 내지 않는 것을 비난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공식적인 추도사 한 번, 추도식 한 번 열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론에서조차 이를 지적하는 기사를 보지 못했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100년이 되는 2023년을 맞을 때에 간토피학살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민관협력으로 준비해야 할 것을 제안하였다. * 100년을 맞기 전까지 남과 북이 함께 간토학살조사에 나서자. * 100년을 맞기 전까지 1923역사관의 학살지역별 전시를 위해 함께 협력하자 * 간토학살백서제작을 위한 남북한일재일 공동기구를 제안하자. * 100년이 되는 해에는 반드시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추도식이 열리도록 하자. * 간토학살진상규명과...
2020.09.02 조회 192
간토대학살은 10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1923년 일본 간토지방에서의 큰 지진으로 인해 10만 여 명 이상이 사망했고, 3만 7천여 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지진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6천 이상의 우리 동포들이 이국 땅에서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로부터 97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진실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간토대학살을 향한 역사왜곡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잘못된 기억, 되풀이되는 역사 "1923대지진 당시 유언비어를 믿은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살해했다. "는 역사서술은 일본의 국가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대표적 문장입니다. 이 서술에는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유언비어를 확산시키고, 이를 근거로 계엄령을 선포하여 군대, 경찰이 조선인을 학살했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국가의 책임을 불특정 다수의 민간에게로 떠넘기려 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 97년 동안 일본정부 뿐 아니라 한국정부도 진상조사를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1923년의 유언비어를 지금도 그대로 믿는 일본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더구나 재난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재일동포들에 대한 혐오범죄는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본 정치인들은 학살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고 추도비를 철거하려 한다거나, 추도행위조차 못하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올바른 역사인식의 공유, 한일평화의 지름길입니다. 잘못된 역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한일평화의 지름길입니다. 일본정부는 학살의 역사를 축소하고, 왜곡하고, 심지어 부정하고 있지만, 한일의 시민들은 착실하게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과 학살피해자들을 매년 추도해 오고 있습니다. 1923한일재일시민연대는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한국에도 진실규명의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정부차원의 추도식이 100년을 맞는 핵심적 과제임을 알리려, 국회에서 전시회를 열고, 연구자들과 학술토론회를 개최하였으며, 언론에 호소하여 여러...
2020.08.29 조회 221
- 상해임시정부와 조선인들은 일본 당국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도 진상조사를 하였다. - 경찰의 억압 속에서도 일본 시민들은 진상조사와 추도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일본 당국은 마지못해 시민들의 추도활동을 허용하지만, 국가의 책임은 여전히 부정하고 있다. - 한국 정부는 해방 이후 진상조사도 추도식도 계획하고 있지 않다. - 한일재일 시민연대의 힘으로 한국과 일본의 국가책임을 강력하게 물어야 할 때 1923년, 식민지 조선과 재일동포들은 일본 당국의 감시 속에서도 진상조사를 하였다. 식민지 조선에서 그리고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은 학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후 조선에서는 '동경지방이재조선인구제회'가 조직되어 피해지역에 있는 조선인들을 구제하고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0월에는 '관동지방이재조선동포위문반'이 조직되어 구제와 위문사업을 벌이는 한편, 학살의 진상을 조사했습니다. 상해의 [독립신문]에서도 조사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렇지만 학살의 사실을 조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일본 경관의 감시가 따라붙었고 학살을 목격한 일본인들도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조사활동을 통해 약 6천여 명의 조선인들이 학살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학살사건 이후 곳곳에서 열린 추도모임과 딜레마 학살사건 이후 일본 시민들은 학살당한 조선인들을 추도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추도회를 열거나 추도비, 그리고 피학살자를 묻는 묘지에 묘비 등이 세워졌습니다. 일본 당국의 방해와 지역주민들의 반발도 있었고, 학살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계속 되었습니다. 추도비를 세울 때에는 지역주민들과 추도비에 써 넣을 글자들을 두고 학살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학살자는 누구인지, 왜 학살되었는지 등을 새겨 넣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꺼리는 이들의 반대가 많아 추도비에는 "무연고자공양회" 등의 명칭을...
2020.08.08 조회 164
- 5대 종단 (불교계, 조계종, 원불교, 개신교, 천주교, 천도교) - 정의연과 나눔의집의 역사는 여성인권운동이자, 평화운동이며, 역사바로세우기운동 - ‘역사바로세우기'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자주와 독립과 민주의 완성이자, 정의와 평화의 토대 - 그 어떤 이유로도 생존자 할머니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역사바로세우기'가 좌절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주기를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한 종교인 호소문 바다가 고요할 때 폭풍우를 대비하십시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피해자들과 함께 30년 운동을 만들어 온 정의기억연대(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의연) 활동에 대한 보도와 나눔의 집에 대한 일로 여론이 분열되어 시끄럽습니다. 사실을 먼저 확인되어야 하겠지만, 억측을 담은 언론 공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운동의 시작에는 생존자 할머니들의 ‘엄청난 용기'가 있었고, 그 용기에 응답한 시민들의 연대가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만들어 온 노력들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폄훼하므로 피해 생존 할머니, 오늘과 내일의 세대들의 역사바로세우기를 무의미하게 하는 현실이 서글픕니다. 위안부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18명에 불과한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운동은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정의연과 나눔의집의 역사는 여성인권운동이자, 평화운동이며, 역사바로세우기운동입니다. 이 일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우리의 송구한 맘을 담아서 함께 거친 바다를 꿋꿋하게 항해하는 배입니다. 모두의 염원을 담은 배가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반드시 목적지까지 닿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현재 정의연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회계나 운영에 대한 문제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함이 마땅합니다. 정의연은 이를...
2020.05.22 조회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