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전시

관동 조선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 기획전

간토 코리안 제노사이드와
국가 그리고 민중

제 4부
해방 후 조사 추도

해방 후 조사, 추도, 남겨진 과제

おわりに-戦後の調査・追悼、残された課題

해방 후 재일 코리언과 일본인들은 추도와 진상규명 활동을 해 왔습니다. 2003년에는 일본 변호사연합회가 일본 정부에게 사건을 조사하고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죄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사건에 관여했다는 것을 인정한 적은 없습니다. “불령선인”으로 학살당한 사람들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은 채 유족에 대한 사과도 없었습니다. 학살을 낳은 배타적인 사고방식과 제도적 차별 등은 지금도 일본사회에서 계속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도 우리들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조선인 학살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戦後、在日コリアンと日本人により、追悼と真相究明が行なわれてきました。2003 年には日本弁護士連合会が政府に事件の調査と犠牲者・遺族への謝罪を行なうよう勧告しました。 しかし、日本政府が事件への関与を認めたことはありません。「不逞鮮人」として虐殺された人びとの名誉回復は果たされず、遺族への謝罪もありません。虐殺を生み出した排外的な考え方や制度的な差別等は今も日本社会で再生産され続けています。 日本政府も私たちも真摯にこの問題に向き合う必要があります。朝鮮人虐殺事件はまだ解決していないのです

도쿄 아라카와 강변에서 열린 추도식의 모습, 2009년 9월 인근 사유지에 건립된 추도비에는 “이 희생자들을 추도하고 역사를 돌이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마음을 경계하려 한다”고 적혀 있다.
東京の荒川河川敷での追悼の様子。2009 年9 月、近くの私有地に建立された追悼碑の案内板には「この犠牲者を悼み、歴史を省み、民族の違いで排斥する心を戒めたい」と書かれている。
2003년 도쿄에서 열린 간토대진재80주년기념집회
二〇〇三年 東京での 「関東大震災八十周年記念集会」
2009년 사이타마, 군마의 석비와 묘지를 방문해 추도하고 배우는 한국사람들
“조선인 학살의 진실규명을 멈추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손으로 만든 나무패를 한국에서 가지고 왔다.
2009年に埼玉・群馬の石碑と墓を訪ね、追悼と学習をする韓国の人たち。「朝鮮人虐殺
の真実究明をやめません」と書かれた。手製の塔婆を韓国から 運んできた
사이타마현 가타야나기무라(片柳村)에서 9월 4일 살해당한 강대흥(姜大興)의 무덤. 이름이 밝혀진 아주 드문 경우지만 유족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았다.
埼玉県片柳村で 9月 4日に 殺された 姜大興の墓。名前が分かる希有な例だが、遺族か

간토 조선인 학살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한 한일 민간의 노력

@@おわりに-戦後の調査・追悼、残された課題@@

한국에서 간토 조선인 학살 희생자를 추도하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985년 희곡 작가 김의경에 의해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가 발표되었고, 그 해 9월 문화예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일본 치바현 관음사에 학살희생자를 위령하는 보화종루를 지어 봉헌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20여년이 흘러 [간토대진재 조선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한, 일, 재일 시민연대(약칭, 1923한일재일시민연대)>가 결성되어, 처음으로 한국, 일본, 재일동포들이 협력하여 올바른 과거사 정리와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사업을 공조해왔습니다.
동 단체의 구체적인 사업으로는 국제학술 토론회, 한, 일. 순회 기획전시회, 한,일 양국의 의회에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제정 추진, 국제사회(유엔인권이사회)에 간토코리안제노사이드의 진상조사를 위한 제안, 학살희생자들의 유족찾기, 유골봉환,추모비 건립등을 추진해가고 있습니다.

@@戦後、在日コリアンと日本人により、追悼と真相究明が行なわれてきました。2003 年には日本弁護士連合会が政府に事件の調査と犠牲者・遺族への謝罪を行なうよう勧告しました。 しかし、日本政府が事件への関与を認めたことはありません。「不逞鮮人」として虐殺された人びとの名誉回復は果たされず、遺族への謝罪もありません。虐殺を生み出した排外的な考え方や制度的な差別等は今も日本社会で再生産され続けています。 日本政府も私たちも真摯にこの問題に向き合う必要があります。朝鮮人虐殺事件はまだ解決していないのです@@
@@戦後、在日コリアンと日本人により、追悼と真相究明が行なわれてきました。2003 年には日本弁護士連合会が政府に事件の調査と犠牲者・遺族への謝罪を行なうよう勧告しました。@@

한국 국회기자회견에서 <간토조선일학살 진상조사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戦後、在日コリアンと日本人により、追悼と真相究明が行なわれてきました。
치바 관음사의 보화종루를 찾은 한국의 대학생들
@@戦後、在日コリアンと日本人により、追悼と真相究明が行なわれてきました。
일본 기타큐슈, 후쿠오카의 주요지역에서 간토패널, 순회전시회 개최
2009년 3월 28일 <식민지 범죄, 국가적 책임을 묻는 제4차 국제 심포지움>이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한일 평화의 씨앗은 공동의 역사관이 밑거름이 되어야

@@おわりに-戦後の調査・追悼、残された課題@@

일본에서는 내셔널리즘을 강화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제작된 역사왜곡 교과서를 채택하는 교육과정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교육현장에서는 한일 근대사 속에서 일본의 식민범죄와 그 청산과정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으며 ‘간토 조선인 학살사건’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그대로 반영하였거나, 혹은 교육과정의 개정에 따라 아예 내용조차 사라질 때도 있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경고는 식민지의 아픔을 겪었던 한국만이 아니라 원자폭탄으로 초토화되었던 일본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차세대들은 서로를 적으로 만드는 허위의식을 걷어내고, 아시아의 평화를 건설해가는 지도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의 시점으로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는 공동의 역사관이 필요합니다.

@@戦後、在日コリアンと日本人により、追悼と真相究明が行なわれてきました。2003 年には日本弁護士連合会が政府に事件の調査と犠牲者・遺族への謝罪を行なうよう勧告しました。 しかし、日本政府が事件への関与を認めたことはありません。「不逞鮮人」として虐殺された人びとの名誉回復は果たされず、遺族への謝罪もありません。虐殺を生み出した排外的な考え方や制度的な差別等は今も日本社会で再生産され続けています。 日本政府も私たちも真摯にこの問題に向き合う必要があります。朝鮮人虐殺事件はまだ解決していないのです@@
@@戦後、在日コリアンと日本人により、追悼と真相究明が行なわれてきました。2003 年には日本弁護士連合会が政府に事件の調査と犠牲者・遺族への謝罪を行なうよう勧告しました。 しかし、日本政府が事件への関与を認めたことはありません。「不逞鮮人」として虐殺された人びとの名誉回復は果たされず、遺族への謝罪もありません。虐殺を生み出した排外的な考え方や制度的な差別等は今も日本社会で再生産され続けています。 日本政府も私たちも真摯にこの問題に向き合う必要があります。朝鮮人虐殺事件はまだ解決していないのです@@

2008년 8월 한신대학교 학생들과 치바의 학살현장을 찾아 일본의 진상규명 활동가 오오타케 요네코로부터 등기조사를 하고 있다.
2009년 8월 아힘나 평화학교학생들과 사이타마, 군마지역에서의 학살터와 추도비를 찾아다니며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을 만나기 위한 현장학습을 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책임과 과제

@@おわりに-戦後の調査・追悼、残された課題@@

친일정부나 군사정권, 반민주 독재정권하에서는 기대하지 못한다 하여도 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화로 [민주화 운동기념사업회],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져 일제하 식민지 범죄에 대한 올바른 진실규명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간토조선인학살에 대하여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이는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 민주정권의 크나 큰 실정이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일본학자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학살된 희생자 유족이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찾아가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위원회에서는 ‘학살희생자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거나, ‘국위를 선양한 재외동포가 아니’라거나 ‘국가에 의한 집단희생자라 하더라도 조사해야할 시기가 해방이후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등의 이유로 외면당했습니다. 한국정부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단순히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 땅에서 학살당한 우리동포 6,661명의 억울함을 풀어 줄 기관과 기구가 전무합니다. 따라서 기존의 가구로 조사가 어렵다면 특별법을 제정해야할 것이고, 적절한 시기에 조사가 이루어질 때를 대비하여 일본정부에 사건관련자료에 대한 증거보전신청을 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간토지역 진상조사 활동가들이 현장조사를 통해 찾아낸 자료들 중 학살조선인들의 이름과 고향주소가 기록되어 있으므로 정부는 행정력을 동원하여 유족들을 찾아내어 희생자들의 유골을 고향으로 봉환하거나, 법적소송을 통해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戦後、在日コリアンと日本人により、追悼と真相究明が行なわれてきました。2003 年には日本弁護士連合会が政府に事件の調査と犠牲者・遺族への謝罪を行なうよう勧告しました。 しかし、日本政府が事件への関与を認めたことはありません。「不逞鮮人」として虐殺された人びとの名誉回復は果たされず、遺族への謝罪もありません。虐殺を生み出した排外的な考え方や制度的な差別等は今も日本社会で再生産され続けています。 日本政府も私たちも真摯にこの問題に向き合う必要があります。朝鮮人虐殺事件はまだ解決していないのです@@
@@戦後、在日コリアンと日本人により、追悼と真相究明が行なわれてきました。2003 年には日本弁護士連合会が政府に事件の調査と犠牲者・遺族への謝罪を行なうよう勧告しました。 しかし、日本政府が事件への関与を認めたことはありません。「不逞鮮人」として虐殺された人びとの名誉回復は果たされず、遺族への謝罪もありません。虐殺を生み出した排外的な考え方や制度的な差別等は今も日本社会で再生産され続けています。 日本政府も私たちも真摯にこの問題に向き合う必要があります。朝鮮人虐殺事件はまだ解決していないのです@@